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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불멸의 대작 모든 종교와 사상을 뛰어넘어 진정한 행복을 거머쥔 자유인의 이야기 그리스를 대표하는 국민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알렉시스 조르바를 꼽았다. 사상가이자 정치적 행동가, 지식인이었던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까지 골고루 사상적 영향을 받았는데, 마지막에 만난 조르바를 ‘영혼의 스승’이라 칭하며 존경했다. 사실 조르바는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하고, 가진 것이나 지식도 없는 보잘것없는 노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조르바가 가진 자유로움과 유쾌함, 그리고 넓은 가슴과 뜨거운 사랑은 그 어떤 지식인의 사유보다 깊고 철학적인 것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터키의 ..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불멸의 대작
모든 종교와 사상을 뛰어넘어 진정한 행복을 거머쥔 자유인의 이야기

그리스를 대표하는 국민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알렉시스 조르바를 꼽았다. 사상가이자 정치적 행동가, 지식인이었던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까지 골고루 사상적 영향을 받았는데, 마지막에 만난 조르바를 ‘영혼의 스승’이라 칭하며 존경했다. 사실 조르바는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하고, 가진 것이나 지식도 없는 보잘것없는 노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조르바가 가진 자유로움과 유쾌함, 그리고 넓은 가슴과 뜨거운 사랑은 그 어떤 지식인의 사유보다 깊고 철학적인 것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난 20세기 초반의 그리스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금욕과 사유를 통해 삶의 깨달음에 도달하려고 하는 젊은 지식인인 ‘나’와 종교, 이념, 타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거친 노동자 조르바가 탄광 사업을 함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젊은 지식인과 나이 든 거친 노동자는 함께 탄광을 파며 종교와 삶, 사랑과 사람, 정치,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나’는 거침없고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조르바를 통해 그 누구를 통해서도 느낄 수 없었던 진정한 ‘삶’에 대해 배우게 된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차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차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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